2013년 9월 4일 수요일

<맑스 재장전: 자본주의와 코뮤니즘에 관한 대담>에 등장하는 정치철학자들의 한마디

<맑스 재장전: 자본주의와 코뮤니즘에 관한 대담>에 등장하는 정치철학자들 여덟 명의 ‘한마디’ 씩을 POP 형식으로 만들어봤다. 다큐멘터리 영화 <맑스 재장전>의 애니메이션 컷을 담당한 세르비아의 애니메이터 다코 그리키니치(Darko Grkinić)가 각 정치철학자들의 캐리커처를 그려줬는데, 그걸 이용해 만들어봤다.










<맑스 재장전> 드디어 책으로 나오다!

제이슨 바커의 다큐멘터리 영화 <맑스 재장전>이 도서출판 난장을 통해서 책으로 나왔습니다. 다큐멘터리 영화를 흥미롭게 보신 분들이라면 거기에 출연한 주요 대담자들(책에 나오는 순서대로 마이클 하트, 안토니오 네그리, 슬라보예 지젝, 니나 파워, 알베르토 토스카노, 페터 슬로터다이크, 존 그레이, 자크 랑시에르)의 발언 내용을 ‘있는 그대로’ 모두 다 읽으면서 영화의 내용을 곱씹어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영화를 안 보신 분들이라도 맑스 사상의 현재성, 자본주의의 (경제·금융) 위기, 코뮤니즘의 가능성 등에 관한 대담자들의 재기발랄하고도 날카로운 의견들을 맘껏 즐기실 수 있을 것입니다.




































맑스 재장전
자본주의와 코뮤니즘에 관한 대담

제이슨 바커(엮음), 마이클 하트, 안토니오 네그리, 슬라보예 지젝, 니나 파워, 알베르토 토스카노, 페터 슬로터다이크, 존 그레이, 자크 랑시에르 (대담) | 은혜·정남영 옮김

인문・사회・정치철학 | 신국판 변형(140×210) | 256쪽 | 15,800원

 
한국의 독자들에게
서문: 어느 약을 먹을 텐가?
 


1. 혁명, 우리가 원하는 것을 만들어내기 마이클 하트와의 대담
2. 사건/이념이 아닌 물질적 구축으로서의 코뮤니즘 안토니오 네그리와의 대담
3. 코뮤니즘, 역사의 기차를 멈추는 비상 브레이크 슬라보예 지젝과의 대담
4. 모든 진실을 알려주는 일회적 사건은 존재하지 않는다 니나 파워와의 대담
5. ‘코뮤니즘’으로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가? 알베르토 토스카노와의 대담
6. 코뮤니즘이 아니라 코-이뮤니즘을 페터 슬로터다이크와의 대담
7. 코뮤니즘이라는 이념의 탈신비화 존 그레이와의 대담
8. 새로운 공통적 세계의 구축으로서의 혁명 자크 랑시에르와의 대담


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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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표지]
여덟 명의 정치철학자가 다시 장전하는
맑스주의라는 비판의 무기!
21세기 초 전 세계를 강타한 사상 초유의 경제·금융 위기는 자본주의의 종말을 예고하는 것일까? 아니면 세계의 종말을 상상하는 것이 자본주의의 종말을 상상하는 것보다 정녕 더 쉬운 일일까?

계급투쟁, 상품물신주의, 비물질노동, 공통적인 것, 코뮤니즘이라는 이념 등 현대 자본주의를 이해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개념들의 향연을 통해 자본주의의 위기와 코뮤니즘의 전망을 진단한다.



2011년 11월 25일 금요일

<맑스 재장전> DVD 판매 임박!

<맑스 재장전>에 관심을 가져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맑스의 사상을 직접적으로 다룬 세계 유일의 애니 다큐멘터리 <맑스 재장전> 제작팀은 여러분의 성원에 감사드리고자 한국어-영어 자막, 다양한 서플먼트가 추가된 DVD를 제작 중입니다.  빠른 시일에 선보이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기대해주십시오!

































구매 문의는 아래의 연락처로 연락 바랍니다.
filmsnoirs@yahoo.fr 또는 http://kmarxreloaded.blogspot.com/ (댓글을 남겨주세요)

이제 <맑스 재장전>을 대학에서 상영하세요!

이제 <맑스 재장전>을 대학에서 상영하세요! 새로운 편집, 새로운 한국어 자막이 달린 <맑스 재장전> 필름이 여러분들과의 만남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미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맑스 재장전> 상영과 관련 시네토크가 성공리에 끝난 바 있고, 올해 말~내년 초경 중앙대학교에서도 상영회가 있을 예정입니다.

 기자재가 갖춰져 있을 경우에는 제이슨 바커 감독과의 영상 대담도 가능합니다. 























































상영 관련 문의는 아래의 연락처로 연락 바랍니다.
filmsnoirs@yahoo.fr 또는 http://kmarxreloaded.blogspot.com/ (댓글을 남겨주세요)

2011년 10월 19일 수요일

제이슨 바커와의 대담 (2)

이 대담은 <한국일보>(2011년 9월 25일자)에 실린 대담의 확장판입니다. 지면에는 공간의 제약 때문에 분량이 대폭 축소된 채 실렸습니다. 원래의 대담 내용은 여기에 포스팅하는 것보다 더 길지만 제이슨 바커 감독의 대답을 중심으로 약간의 수정과 편집을 가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대담의 원본을 제공해주신 이윤주 기자님께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맑스 유행이 허세일 수도 있지만 정치를 생각하게 한다면 문제 안 돼”
“유럽의 반세계화 운동도 맑스 영향, 신자유주의 시대엔 착취 개념도 달라져야”

애니메이션 다큐 <맑스 재장전>의 제이슨 바커 감독 인터뷰

<맑스 재장전>(2010)의 감독 제이슨 바커(39)는 독특한 이력을 지녔다. 번역가・저술가로 활동하며 영화도 찍는데 본업은 이론가다. 영국에서 태어나 정치철학을 공부했고, 현존하는 프랑스 최고의 철학자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알랭 바디우를 사사해 카디프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가 쓴 <알랭 바디우 비판적 입문>(2002)은 영미권에 바디우 철학을 소개한 최초의 입문서로, 2009년 국내에서도 출간됐다.

<맑스 재장전>이 제3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2011년 9월 22~28일)에 초청돼 24일 한국을 찾은 바커를 만났다. 인터뷰에는 바커의 <알랭 바디우 비판적 입문> 한국어판 해제를 쓴 철학자 서용순 씨가 함께 했다. 최근 한국 정치에 관한 글을 쓰면서 5・18 관련 책을 구상 중이라는 서용순 씨 역시 바디우를 사사해 파리8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얼마 전 바디우의 <철학을 위한 선언>(2010)을 번역했다.

























알랭 바디우의 책을 썼다. 바디우를 연구한 이유는 뭔가?
내 박사학위 논문의 주제가 바디우였다. 당시 영어권 국가에서는 바디우가 별로 유명하지 않았다. 철학이 지금은 정체된 상태에 있는데 바디우가 던지는 철학적 질문들은 내게 무척 흥미로웠다. 일례로 유럽 철학은 언어나 문화처럼 미시적인 것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바디우는 거시적이면서도 철학적이고 정치적인 사유를 한다. 원래 철학은 그래야 한다. 흥미롭고 급진적인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

바디우를 공부하면서 당신의 사유가 바뀐 지점, 계기가 있다면?
바디우의 경우 스스로 가장 중점적으로 생각했고 기여한 부분이 정치이다. 철학이 정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에 대해서 말했다. 전 세계가 정치적으로 보수화되어가는 와중에 바디우는 정치가 더 혁명적・급진적이 될 수 있다고, 철학이 정치를 바꿀 수 있다고 말한 얼마 안 되는 용기 있는 사람 중 하나이다.

‘사건’은 바디우의 대표 개념이다. 최근의 정치적 상황에서 ‘사건’이라고 생각하는 게 뭔가?
사실 ‘사건’은 복잡한 개념이다. 바디우는 1917년 러시아 혁명을 사건으로 본다. 하지만 사건은 드물다. 어디서, 언제 일어났는지 정의하기조차 힘들다. 최근의 사건이라면 세계경제 위기인데 바디우의 정의로는 사건이 아니다. 바디우가 말하는 사건은 지엽적인 상황에서 일어나더라도 결과적으로는 보편적인 영향을 미쳐야 한다. 최근의 세계경제의 위기가 어떻게 보편적으로 영향을 미칠지는 아직 알기 어렵다.

영화 얘기를 본격적으로 해보자. DMZ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출품작이 거의 그렇지만, <맑스 재장전>은 절대 대중적이지 않다. 그런데 첫 회는 매진이 됐다. 왜 그렇다고 생각하는가?
정말 놀랐다. 어떻게 보면 한국이 흥미로운 국가이다. 서구의 나라들은 소련이 붕괴되면서 공산주의가 붕괴됐다고 생각하고, 거기에 책임을 묻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는 핵 위기 이후의 세계 평화를 유지하자고 말들 하는데 한국 사람들은 이런 시도들이 다 쓰레기라는 것을 잘 아는 것 같다. (웃음) 이게 환상이고, 어떻게 보면 공산주의의 붕괴 운운하는 게 말도 안 되는 생각이라는 걸 알고 있는 게 아닐까?

나는 개인적으로 재밌게 봤다. 몇몇 부분에서 영감도 얻었고. 내 생각이 확인되기도 하고……. 불만은 영화가 중간에서 끝난 느낌이라는 것? 현실에 대해, 그러니까 경제・금융・환경의 위기부터 상품물신성과 공산주의 등 현실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그 ‘너머’는 없다. 적어도 이런 객관적 현실을 넘어가려는 어떤 시도들이 가능한지는 언급해줘야 하지 않나. 그래서 궁금한데 혹시 속편이 있나? <맑스 레볼루션>?
사실 “바커는 입장이 없다”는 관람평을 많이 받긴 했다. 그런데 TV시스템 자체가 입장을 갖도록 허락해주질 않는다[<맑스 재장전>은 TV용 다큐멘터리로 제작됐다]. 시스템 자체가 모든 걸 굉장히 통제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입장을 표명한다는 것, “당장 뭘 하자”라는 식으로 말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방송국에서 그런 말을 하도록 내버려두질 않는다. 글쎄, <맑스 재장전>의 속편을 만든다면 확실히 <맑스 레볼루션>이 되어야 할 텐데, 가능할지 의문이다. (웃음) 혁명적 대안을 만들기 위해 우리가 사유를 하는 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문제를 새로운 방식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요즘에는 철학이 일종의 자조 혹은 위안거리로 전락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유한다는 건 쉬는 게 아니다. 어떻게 보면 사유란 우리를 힘들게 한다. 우리로 하여금 끊임없이, 활발히 생각하게 만드니까. 이런 사유의 목적에 부합한다면, 사람들이 내 영화를 보고 생각하기 시작한다면 내 영화는 할 일을 다 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

영화를 보면 서두에서 2008년 경제위기 이후에 맑스주의가 주목받는다고 했다. 유럽에서는 상당히 유행처럼 나타났다고 했는데, 왜 그런가? 실제로 그런가?
굉장히 중요한 질문이다. 영화를 통해 이 부분을 표현하고 싶었다. 어떻게 보면 맑스 자체가 아니라 ‘공산주의라는 이념’(idea of communism)이 돌아온 것 같다. 공산주의가 시작되는데 기여하기는 했지만 맑스주의는 공산주의가 아니다. 실제로 최근의 세계경제 위기 등이 촉발한 ‘맑스주의의 유행’은 맑스주의에만 한정되지 않는 것 같다. 예컨대 지극히 정치적이지만 맑스와 전혀 상관없는 유토피아적 요소를 지닌 반세계화운동도 현재 유럽에서 유행 중이다. 다른 한편으로 사람들에게는 자본주의에 대한 향수도 있는 듯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지금 이전의 자본주의 시대’에 대한 향수 말이다. 아무튼 ‘맑스주의의 유행’은 정치적 문제일 수도 있지만 문화적 움직임일 수도 있다. 따라서 다시 물어봐야 할 질문은 이렇다. 세계경제 위기와 맑스의 재장전이 우연인가? 정치적 필연성을 띠는 것인가?

한국에도 2008년 이후 맑스주의가 다시 관심받는 것 같다. 2006~07년 맑스 철학을 16번 가량 무료로 강의한 적이 있는데 늘 70~80명 정도가 들었다. 아무래도 작금의 상황이 객관적으로 볼 때 참혹하기 때문인 듯하다. 이 상태에서 벗어나고는 싶은데 대안은 많지 않으니까 자본주의를 비판한 맑스에게서 뭔가 단초를 얻고 싶어 하는 것 같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접근방식은 유럽과 조금 다르다. 한국에서는 경제적 현실을 바라보는 눈이나 수단으로 맑스주의가 작동하고 있다. 유럽에도 그런 경향이 있지만, 사회과학적 시선으로만 맑스주의를 보는 게 항상 반복된다. 거기서 벗어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맞는 말이다. 바디우뿐만 아니라 그에게 영향을 받은 슬라보예 지젝도 <공산당 선언>의 맑스는 흔쾌히 언급한다. 그러나 맑스의 경제학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을 안 한다.

영화에서 개인적으로 인상적으로 본 것은 맑스가 할리우드 배우들과 나란히 서있는 포스터가 신문에 실린 애니메이션 장면이었다. 체 게바라의 혁명이 자본주의 시대에 티셔츠나 목걸이 디자인으로 변질됐듯이, 맑스주의 역시 이제는 하나의 패션이 된 것 같다. 그 점에서 지금 맑스주의를 옹호하는 대중의 심리 기저에 일종의 지적・윤리적 허영심이 있는 것 아닐까? 이런 의미에서 한국에는 ‘강남 좌파’라는 표현이 있다. 유럽에도 ‘캐비어 좌파’라는 표현이 있지 않나?
프랑스 사람들은 철학이 너무 어렵거나 급진적이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밥 먹고 쉬면서 얘기할 수 있을 정도? 그런데 가장 중요한 건 ‘생각’이다. 흔히 사람들은 “이 사람은 저럴꺼야”라는 식으로 빨리 판단해버리지 않는가. ‘강남 좌파’든 ‘캐비어 좌파’든 잘 사는 것처럼 보이니까 그들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경향이 있는데 중요한 건 우리가 편견 없이 바라보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맑스가 다시 유행하는 현상 역시 사람들의 허위의식을 보여주는 일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허세가 사람들을 생각하게 만들 수 있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맑스 재장전>은 맑스의 여러 이론적 개념이 신자유주의 시대에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여러 학자들의 입을 통해 말하고 있다. 당신은 맑스의 개념들이 어떻게 바뀌었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영화를 보면 지젝이 이런 지적을 한다. 오늘날 노동자들은 “정상적인 착취시스템에 머물게 해달라”는 요구만 한다는 지적. 맞는 말이다. 사실 이제는 노동시간에 의해서 착취가 정의되는 게 아니다. 우리가 어디를 가든, 어디에 있든 착취가 항상 존재한다. 심지어 우리는 TV를 볼 때도 착취당한다고 말할 수 있다. 예컨대 광고를 봄으로써 우리는 또 다른 착취 메커니즘에 들어가는 것일 수 있다. 실로 다양한 착취가 존재하는 것이다. 착취의 한계는 어디이고, 어디서 끝나는가? 이것은 민감한 질문이다.
국가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맑스는 가까운 미래에 국가가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완전히 민주화된 국가에서 사람들이 스스로의 이해를 대변하고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우리가 20세기에 겪은 경험은 이와 정반대였다. 정부가 아니라 일반적 통제의 시스템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국가는 어디에나 늘 존재하지 않는가? 한국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영국에서는 모든 사람이 국가 차원에서 통제되고 있고, 또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이런 경우를 우리가 지금껏 사용했던 어휘로 사유할 수 있는가?

영화에 출연하는 학자 중에서 당신이 가장 동의하는 학자는?
다 중요하다. (웃음) 영화에 나오는 모든 학자가 영화를 통해 질문하고자 하는 가치 있는 대답을 했다. 그들의 작업을 하나 같이 모두 존중한다. 누구에게 더 동의한다거나, 누군가만이 답을 갖고 있고 진실을 알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모두 다른 관점에서 중요한 통찰을 보여주고 있다.

당신이라면 현실의 문제점을 깨닫게 하는 빨간색 알약과 현실을 받아들이게 하는 파란색 알약 중에 뭘 고를 건가?
빨간색 알약. (웃음) 그런데 사실 나는 니나 파워가 한 말에 동의한다. 선택이라는 것 자체가 좋은 생각은 아닌 것 같다. 인생이 생각보다 복잡하다. 마지막 장면에 내가 이런 질문을 배치한 건 아이러니한 상황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세상을 바꾸는 데는 개인의 선택보다 훨씬 더 복잡한 과정이 동반돼야 한다. 오늘부터 뭔가를 하겠다고 해서 당장 뭔가가 이뤄지는 건 아니니까. (이윤주 기자 | misslee@hk.co.kr)

2011년 9월 15일 목요일

제이슨 바커와의 대담 (1)

이 대담은 좌파 사상의 교류를 위해 만들어진 비영리 온라인매체 뉴레프트프로젝트(New Left Project) 2011년 5월 26일자에  “맑스, 매트릭스에 들어가다”(Marx Enters the Matrix)라는 제목으로 수록된 대담을 수정보완한 것입니다.

















제이슨 바커와의 대담
네마냐 코르시치(루블라냐대학교 석사과정)


왜 맑스를 재장전해야 하는가?
원래 나는 맑스의 편지들을 각색해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들려고 했다. 이 아이디어는 이제 내 다음번 작품이 될 것이다. 그러던 와중에 전 세계적 금융•경제위기가 발생했다. 그때 나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이를 밝히는 데 맑스의 사상이 어떤 도움이 되는지를 사실에 근거해 지금의 시점에서 설명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직감했다. 흔히 “맑스가 옳았다”라고들 한다. 그러나 다들 왜 그런지는 결코 설명하지 않더라.

맑스를 다루는 TV용 다큐멘터리는 흔치 않다. 이 영화를 만들 때 방해받지는 않았는가?
아르테/ZDF와 독일 제작자들은 내 대본을 아낌없이 지원해줬다. 당연히 처음에는 그들이 지게 될 책임에 꽤 신경이 쓰였다. 맑스의 사상은 여전히 급진적인 정치적 함의를 품고 있으니까. 그렇지만 TV에서 혁명을 벌일 수는 없다. TV 내용은 매우 엄격히 규제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맑스의 사유를 현대의 맥락에 위치시켜보려는 이 영화의 목적은 좀 얌전해 보일런지 모르겠다.

맑스의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맑스를 다루는 TV 프로그램을 좀체 볼 수 없다. 왜 그런가?
내 경험을 말해보면 TV쪽 사람들이 그런 프로그램을 원하지 않는 것 같더라. 제작비가 너무 비싸니까. 내가 틀린지도 모르겠지만, 그저 정치적으로 논란거리라고 해서 TV쪽 사람들이 맑스를 회피한다는 인상을 받지는 않았다. 그들에게 문제는 상업성이다. 알다시피 맑스의 상업성이 알려진 적이 없지 않은가? 맑스가 유행인 적도 없었고.

<맑스 재장전>은 상영시간이 52분밖에 안 된다. 이 때문에 맑스의 사상이 희화화될 위험은 없을까?
어느 정도는 그렇다. 애니메이션도 삽입되어 있고. 그러나 언론들이 맑스에 대해 주구장창 떠드는 상투어로 점철된 작품을 만드는 것만큼은 피하려고 힘썼다. 왜 그런 거 있지 않은가, “맑스주의가 수백만 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는데 어떻게 맑스주의를 진지하게 다룰 수 있는가?” 맑스 재장전 은 맑스주의에 대한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이 작품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에 맑스의 사상이 타당성을 갖고 있는지 탐구하고 있다. 이건 큰 차이이다.

왜 애니메이션을 활용했는가?
그래야 맑스를 트로츠키와 만나게 할 수 있으니까.

이 영화는 최근의 ‘맑스 르네상스’ 현상도 언급하고 있다. 슬라보예 지젝이 이에 깊이 관여되어 있는데, 이런 점에서 맑스를 트로츠키보다는 지젝과 만나게 할 생각은 해본 적 없나?
없다. 사실 ‘맑스 르네상스’라는 현상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지난 2009년 알랭 바디우와 지젝이 “공산주의라는 이념”(Idea of Communism)에 대해 개최한 국제학술대회에 가봤는데, 정확히 말하면 그들이 말하는 공산주의는 맑스와 더불어 시작하지도, 끝나지도 않는 공산주의이다.

맑스 없는 맑스주의 혹은 공산주의인 셈인가?
바디우의 입장은 그렇다. 바디우는 맑스를 [실제적인 정치적 혁명이 아닌] ‘논리적 반란’의 인물로 읽고 있다. 내가 보기에 공산주의는 맑스라는 이름과 쉽게 떼어놓고 생각해볼 수 있는 이념이 아니다. 당신이 정말 맑스 없는 공산주의를 원한다면, 우선 이런 질문에 답해야만 한다. “그런데 왜 그런 것을 공산주의라고 부르는가?” 물론 바디우나 지젝은 이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늘 공산주의라는 대상/목적보다 ‘이념’을 주장해왔으니까.

그렇지만 “공산주의는 여전히 발명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은 재앙을 불러온 역사적 공산주의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우리를 이끌 수 있지 않을까?
음, 그건 좀 철학적인 문제이다. 내 생각에 바디우와 지젝은 꽤 표준적인 방식으로 플라톤주의를 적용하고 있는데, 플라톤주의는 정치를 형식주의로 몰고갈 수 있다. 스피노자주의도 이와 비슷한 형식주의에 빠질 수 있다. 안토니오 네그리의 스피노자주의적 맑스주의가 이 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20세기의 공산주의는 진정한 공산주의가 아니라 실상 사회주의였다고 말할 때, 공산주의는 공산주의를 만들어가는 과정 속에서만 생각될 수 있다고 말할 때 네그리는 바디우나 지젝의 입장과 가까워진다. 물론 이들의 입장은 철학적으로 다 다르긴 하지만 말이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여러 경제•생태위기를 공산주의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가?
지구의 천연자원 파괴 같은 것은 되돌릴 수 없는 재앙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늘 위기의 ‘해결책’을 발명해냈다. 이른바 ‘녹색 테크놀로지’도 그런 것이다. 공산주의는 이 세상을 재앙에서 구해내는 마법의 주문이 아니다. 자본주의는 위기를 어떻게 다룰지, 위기에서 어떻게 이익을 끌어낼지를 이미 오래 전부터 배워왔다. 공산주의의 타당성은 이처럼 즉각적으로 자명해 보이는 게 아니다. 그러나 공산주의는 아직도 우리 주변을 유령처럼 배회하면서 끊임없이 여러 질문들을 던지게끔 만들고 있다. 이 영화는 그런 질문들을 다루고 있다.

“맑스는 예언자였다”라는 생각이 오늘날의 통념이 된 듯하다. 맑스는 정말 예언자인가?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맑스의 경제이론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는다. 사실 맑스에게 영감을 받은 대다수 철학자들도, 이들 대부분이 이 영화에 나오는데, 마찬가지이다. 맑스가 상식적인 철학자가 되어버렸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맑스의 책을 읽지 않았지만 말이다. 맑스는 BBC라디오가 선정한 최고의 철학자 투표에서 4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상식적’이라는 표현에도 불구하고, 맑스는 여전히 우리에게 많은 말을 해주며 그의 사유는 우리를 놀라게 만든다. 그렇다고 맑스가 노스트라다무스는 아니다. 맑스에게 앞날을 점쳐주는 수정구슬 같은 건 없다.

당신의 새 영화 <맑스 돌아오다>에서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건 뭔가?
역사적 인물로서 맑스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다는 점? 유머러스하고 지적이고 재치 있는 실제 인물로 말이다. (끝)


※ 이 대담과 서구에서의 ‘맑스 르네상스’에 대한 촌평으로는 “<맑스 재장전>과 맑스 르네상스”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2011년 9월 10일 토요일

<맑스 재장전>을 관람할 분들과 관람할 수 없는 분들께

























1. <맑스 재장전>을 관람할 분들께
감사합니다. 아울러 빨간 알약을 집은 당신의 선택에 찬사를 보냅니다. 원래 <맑스 재장전>는 맑스의 서간문에 근거해 맑스의 일대기와 19세기 유럽의 격동기를 재구성하는 형식으로 구상된 작품입니다. 그러나 이런저런 이유로 지금처럼 다큐멘터리 형식을 취하게 되면서, 원래의 구상은 <맑스 돌아오다>(Marx Returns)라는 장편 애니메이션의 각본이 됐습니다. 현재 저희는 이 작품의 완성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맑스 재장전>을 관람할 분들은 이 <맑스 돌아오다>에도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습니다(더 자세한 내용으로는 저희의 홈페이지를 참조해주세요).
아울러 <맑스 재장전>을 재미있게, 흥미롭게 보신 분들께는 입소문도 부탁드립니다. 저희는 가까운 시일 내에 다시 한국을 방문해 <맑스 재장전> 그리고 맑스 사상의 현재성에 대해 여러분들과 좀 더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그러나 너무 오래 기다리시게 하지는 않겠습니다) 이 계획의 성사를 위해서도 여러분의 관심과 도움이 필요합니다. 자세한 일정이 정해지면 이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서 다시 공지하도록 하겠습니다. 아울러 <맑스 재장전>의 트위터<맑스 돌아오다>의 트위터도 자주 방문해주시고 이 주소도 널리 널리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 <맑스 재장전>을 (당장) 관람할 수 없는 분들께
저희는  <맑스 재장전>을 DVD로 만들어 전국 대학교 도서관에 판매할 예정입니다. 좀 더 많은 젊은이들이 쉽게 <맑스 재장전>을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물론 별도 판매도 할 생각입니다만 어떻게 될지는 역시 아직 결정하질 못했습니다). <맑스 재장전> DVD에는 극장판에 미처 다 수록되지 않은 더 많은 내용이 추가될 예정입니다. <맑스 재장전>에 등장한 사상가들의 미편집 인터뷰 내용부터 영화 속 애니메이션 관련 정보, 촬영 뒷 이야기까지 훨씬 풍부한 자료가 삽입될 예정이죠. 이번 영화제에서 미처 <맑스 재장전>을 보지 못한 분들은 곧 발매될 <맑스 재장전> DVD를 통해서 저희와 대화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끝)